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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업의 포로가 된 진보? 길바닥 운동은 살아 있다

2015년 4월 25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글을 싣습니다. 녹색당에서는 앞으로도 녹색당 내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다양한 칼럼을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할 계획입니다. 기고된 글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기업의 포로가 된 진보? 길바닥 운동은 살아 있다   기업의 포로가 된 진보? 길바닥 운동은 살아 있다 [프레시안 books] 피터 도베르뉴 · 제네비브 르바론 <저항 주식회사> 책을 받고 제목과 표지를 본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저항 주식회사 –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동녘, 2015년 3월 펴냄). 빨간 자판기에서 탈핵과 야생동물 보호 운동, 인권 운동 등을 돈만 넣으면 구매할 수 있는 것처럼 디자인했는데, 주제를 함축한 표지 자체로는 훌륭하다. 그러나 환경 운동을 했고, 사회 운동의 연장으로 녹색당 활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책의 문제의식은 수긍이 가지만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너무 운동을 단순하게 보고 일부를 전체인 양 일반화하는 거 아냐?", "그렇지 않은 운동도 얼마나 많은데?"라며 반박거리를 찾고 있었다. <저항 주식회사>는 최근 10여 년간 운동가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활동하면서 대기업과 소비주의, 자본주의 영향력 속에 빠져들었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 운동의 전략은 순화되고, 운동의 방식은 대기업과 제휴하는 시장 해법에 매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빗대어 한때의 '저항'이 '저항 주식회사'로 화려하게 변신했다고 표현한다. "아! 저항 주식회사라니! 이 표현은 너무했어!"   "저항 주식회사라니!" ⓒ동녘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다보니 우리 운동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린피스가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 후원금을 모으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코카콜라, 펩시, 유니레버와 협력해 '천연 냉매'를 개발하는 것, 국제자연보호협회가 보잉, 브리티시페트롤리움, 듀퐁, 몬산토, 셀, 월마트와 동반자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것과 같이 한국에서도 시민 단체와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또는 '사회적 공헌'이라는 명목으로 협력하는 것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재단을 통해 그러한 협력은 더욱 공식화되기도 한다.   운동의 세계화로 그린피스, 옥스팜, WWF(야생동물보호기금), 유엔난민기구와 같은 국제 NGO들의 한국 진출이 가시화되기도 했다. 거리에서는 마케팅 업체들이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국제 NGO들이 펀딩을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이 회원 모집을 위해 마케팅에 쏟아 붓는 비용은 상상을 넘을 정도이고, 실제 효과를 얻고 있다는 이야기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지나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단체에 대해 설명하고, 후원회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이 다수일 테고, 하루 종일 후원회원을 늘리지 못했을 때는 많은 압박을 받을 것 같다. 국제 NGO만이 아니라 국내 시민 단체도 길거리 모금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또 단체 활동을 위한 재정 마련이 그만큼 취약해서이기도 하다. 정부와 기업 후원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후원회원을 모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마케팅이나 모금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저항 주식회사가 등장했을까?   저자들도 '운동이 변했어'라는 이야기보다는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보와 안전을 내세워 운동을 탄압하는 국가, 개인화된 삶을 조장함으로써 운동의 토양을 무너뜨리는 자본주의가 운동을 시장화했다는 것이다. 격하게 동감하는 부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안보와 안전에 국익 논리까지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촛불 단체'라고 해서 광우병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사회는 별도로 관리했다. 저항과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조직적인 국가의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무상 급식 폐지에 항의하는 학부모들마저도 '종북'이라는 빨간딱지를 붙일 정도이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과 노동 운동가, 활동가들에 대한 감시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해외에서 비싼 시위 허가료를 물리고 시위 진압에 '음향 대포'를 사용한다면 국내에서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강화해 소음 규제를 만들고, '명박산성'과 같이 경찰차로 '차벽'을 만들어 시위대의 이동 자체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다.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그리고 언제부턴가 정부는 저항하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벌금을 물려 운동가들의 삶과 정신마저도 파괴하고 있다. 돈으로 운동을 억압하는 가장 치사한 방법을 국가가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항을 억압하는 것은 국가만이 아니다. 기업은 소송을 한다. 몇 해 전 신문 칼럼에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에 대해 '노동자들의 생명의 무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직후 검찰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타이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조사를 받으면서 심적 압박을 안 받을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국가와 기업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하게 만드는 장치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은 또 민주주의의 문제인가? 국가의 운동에 대한 탄압 때문에 '저항 주식회사'가 바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항'에 타격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운동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자유로운 비판과 칭찬, 감시와 격려에 열려 있어야 한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대안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검열' 없이, '두려움' 없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또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에서 풀뿌리 연대는?   저자들은 자본주의가 운동의 기반을 튼튼하게 만들던 하부구조를 무너뜨렸다고 이야기한다. 동료들과 함께 노동조합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연대를 다지던 기반이 무너지고 사회적인 삶은 개인의 삶으로 변화되었다. 노동조합 교육과 조합원들의 유대 활동보다 텔레비전과 자동차, 등산과 같은 취미 생활이 더 달콤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제적 세계화는 공동체적 삶을 해체했고, 그 속도는 더 빨라졌다.   삶의 개인화는 해법도 개인적인 도덕적 실천에서 찾게 만들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같은 캠페인이 등장한 것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불편하기에 찾아낸 출구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만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아무리 전기를 줄여도 정부가 핵발전소를 세우는 정책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체제에 맞서 싸우지 않고서는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가 그렇게 '부드러운' 운동을 요구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시민 단체들도 회원들에게 "쉽게 이야기해야 해", "대중적이어야 해", "재미있어야 해"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동가가 되어 오락가가 되고, 공연 기획자가 되고 있다. 필자도 시민 단체 활동가였을 때 회원이 전화를 하면 더 친절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내가 운동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와 회원은 운동의 동지인데 왜 이럴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운동 공동체 간에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최근에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들의 상황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낮은 임금에 사회적 시선도 1990년대 한창 시민사회 운동이 확산되던 때와는 다르다. 게다가 지금 운동을 시작하는 세대들은 막대한 학자금 대출까지 갚아야 한다. 부자가 되겠다고 운동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운동가들의 삶의 지탱해줄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운동과 운동가들에 대한 방관이 운동을 저항 주식회사로 만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짐을 나눠야 한다. 한국 사회는 운동을 위한 토양은 척박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시민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넘어 해법까지 요구하고 있다. 비판을 하려면 대안까지 내놓으라고 압박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도, 학자들이 나서서 싸워야 할 일도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고 당연히 요구하는 태도, 그렇게 시민사회에 짐을 지우는 일이 우리 운동을 망가뜨리고 있다.   일말의 변명을 하자면 나는 시민사회의 기업화보다 지식인들과 학자들의 기업화가 더 치명적이고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권을 위해 연구 보고서를 조작하고, 정부와 기업 입맛에 맞는 정책 보고서를 만들고 거대 개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기안해낸다. 그렇게 사회를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시민단체가 제대로 활동을 안 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누군가 온갖 이권에 복무하는 한국의 학자들을 다룬 '지식인 주식회사' 이런 책도 한번 써줬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자   이 책의 저자들은 집요하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일관되게 운동의 기업화가 문제이며, 현재 상황으로는 사회적 불안과 대항 운동을 억누르고 포섭하는 기업과 시장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로지 운동의 기업화에 대해 경고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저자들의 메시지가 하도 일관되기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이쯤이면 한국 사회에서도 이 주제를 가지고 한번 논쟁을 해볼 때가 되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운동하는 우리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다.   마음속 깊이 불편했던 이야기들. 지난해 '그린 플래닛 어워드'로 삼성전자와 코오롱이 수상을 했던 일,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소비자 조직의 입장 등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 논쟁을 해볼 만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운동의 기업화'를 주제로 본격적으로 논의해본 적이 없다. 운동을 위기로 몰아넣는 현실을 직시하고, 운동의 토양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이 번역서라서 그렇지 만약에 한국의 운동을 대상으로 같은 주제의 책이 나온다면 논쟁은 촉발될 것이다. 단 그것이 운동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악의적 목적을 갖고 접근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기업의 영향력은 커가고 끊임없이 자본으로 운동을 포섭하는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깨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동가들도 '성장'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운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너희들은 우리랑 함께할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할 때, "우리는 너희들이 없어도 살 수 있어"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화되는 세계에서 운동의 급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운동부터 소비주의와 효율 추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장 이데올로기와 타협하는 순간 운동의 기업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 2014년 12월 16일 광화문 농성장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한 밀양과 청도 할머니들. ⓒ프레시안(최형락)   길바닥을 뜨겁게! 부활하는 거리 정치   저자들의 뜨거운 경고를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운동은 살아 있고, 탄압하는 국가와 유혹하는 자본에 맞서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운동과 운동이 만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국가 폭력의 최전선에서 뜨겁게 싸웠던 밀양과 청도의 할머니들은 쌍용자동차와 스타케미컬 집회에, 세월호 진상 규명에, 강정 해군기지 반대에 함께하고 있다.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따라가 보았더니 그 끝에 핵발전이 있었다며 송전탑과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도 나서고 있다. 그 움직임에 변화된 시민들이 많다.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던 시민들이 '밀양의 친구'가 되어 저항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2012년 그 추웠던 겨울, 쌍용차의 'S', 강정의 'K', 용산의 'Y'를 따 만들어진 "함께 살자" 'SKYAct'(스카이공동행동)를 통해 '국가'와 '자본'에 맞서는 '함께의 힘'을 경험했다. 운동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 기업화되지 않기 위해,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게 위해 연대가 필요하고, 그런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운동의 지평도 확장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엄청난 참사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목격한 청년들이 움직이고 있다. 개인의 삶에서 사회적 삶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회는 무지막지한 국가의 폭력과 탄압에 맞서는 운동이 더 시급해서 '운동의 기업화'가 그렇게 심각한 주제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 주식회사>는 단순히 운동의 기업화를 경고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운동이 어떤 세력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법도 고민하게 만든다.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찾은 답은, 현재 운동이 처한 상황은 어렵고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지만 이 암흑한 시기에 서로 신뢰하고 함께할 수 있는 운동 공동체를 만든다면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765kV 송전탑이 밀양에 다 들어섰지만 밀양 할머니들은 "우리의 마음은 아직 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뜨거운 연대는 운동을 깨어 있게 만든다. 길바닥에서 자주 만나서 함께 행동하자!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칼럼] ‘인조잔디 댓글’에서, 의심

2015년 4월 25일 미디어스에 기고한 김수민 녹색당 언론홍보기획단장의 글을 싣습니다. 녹색당에서는 앞으로도 녹색당 내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다양한 칼럼을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할 계획입니다. 기고된 글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스] '인조잔디 댓글'에서, 의심과 냉소를 뚫고 자신을 돌아본다   '인조잔디 댓글'에서, 의심과 냉소를 뚫고 자신을 돌아본다 [지역에서 정치? 지역에서 진보!] 현실을 개선하려는 자의 태도에 관하여   요즘 구미 지역 단위에서는 ‘구미새로고침’이라는 풀뿌리 시민정치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않은 ‘풀뿌리 정당(로컬 파티)’을 대비한 조직이었지만, 지역 정당 또는 준-정당적 지역정치조직의 활동 보장은 여전히 요원하다. 최근 원혜영 국회의원실에서 유권자단체의 설립을 보장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낸 상태다.   조직내 역량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구미새로고침이 일단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각종 문화사업과 정보공개운동이다. 중앙에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활약중이고, 얼마 전 ‘대구경북정보공개센터’가 출범한 데서 착안해 정보공개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때로는 ‘정보 없음’조차도 선용 가능하다. 한 시민의 건의로 구미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현황과 구미 지역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근로시간을 노동부 구미지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더니 ‘정보부존재’ 통보를 받았는데 이 사실만으로 ‘노동부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며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구미 지역 학교들의 인조잔디 운동장 유해 물질 다루었다. 지난해 가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실시한 유해 물질 조사에서 드러난 검출 수치를 입수해 공개했다. 기준치를 초과한 유해물질이 검출된 비산초등학교가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사실과 함께 정보공개에 응한 학교들의 인조잔디에서 검출된 납, 카드뮴 등 유해 물질이 공개된 정보에 담겨져 있다.   이 내용은 구미 시민들이 가장 많이 가입된 것으로 알려진 모 카페에도 올려놓았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로 인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을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조잔디를 반대하지만 크게 다른 태도를 가진 세 사람이 있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A: “이 자료는 의심스럽습니다. 수치를 조작할 수도 있지 않은가요. 흙 아니면 다 거기서 거기일 것입니다. 흙이 좋은데 인조잔디를 왜 까는지.” B: “납이 검출 되었다니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름에 뜨거운 햇빛 받으면... ‘오 마이 갓’이네요. 애들 장난감에 납 성분이 검출되면 무조건 회수하지 않나요? C: “마사토 모래라고 안전할까요. 예전에 뉴스에서 놀이터 모래 조사했더니 온갖 중금속이 기준치 초과해서 나왔다고 하던데요. 국민들이 세금 더 많이 내서 인조잔디 깔아야 안전한가요? 도대체 이 세상에 안전한 게 뭐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떤 좋은 걸해도 똑같을 듯.” [caption id="attachment_3394" align="aligncenter" width="580"] ▲ 유해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구미시의 한 초등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사진=김수민)[/caption] A씨는 조사 결과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애초에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실시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을 것이다. 실시는 했는데 공개하지 않는다면? 공개하지 않는다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했더니 “수치가 조작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음모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본인이 연구원으로서 직접 현장에서 검사하지 않는 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구미 지역 사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해 기준치의 수십배를 초과해서 납이 검출된 학교들이 있다. 이들도 수치가 조작된 것인가. 일부러 낮추었는데도 그 정도인 걸까, 아니면 부풀려진 것인가. A씨가 변함없이 조작가능성을 의심한다면 전자가 되겠지만, 인조잔디가 무해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후자일 수도 있다. 의심이란 끝도 없고 갈래도 무한한 법이다. 이런 의심들이 날것으로 부딪힐 경우 토론은 길을 잃는다. A씨는 반대편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에 부딪히는 순간 무력해질 것이다.   B씨처럼 충격받을 사람이 많을지는 모르겠다. 평균적인 반응보다는 예민하다고 볼 수도 있다. B씨의 이런 예민함은 A씨의 그것과 양적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결말을 향하고 있다. A씨가 유해 기준치에 미달하는 검출량에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면, B씨는 우선 자료를 믿되 유해기준치에 미달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으며, 조금이라도 검출된 이상 심각하게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행정편의주의에 절은 어떤 공무원이 ‘기준치 미달’임을 아무리 떠들어봐야 B씨에게는 먹히지 않을 것 같다. 기준치를 초과한 학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공인된 사실은 상대가 반박하고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만큼 좋고 유리한 근거는 없다. 똑같은 정보를 두고도 A씨는 그것을 다소 외면하는 반면, B씨는 공인된 사실을 활용하고 있다. 공인된 사실은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자기 자신이 인정하여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민감하게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고 가고 있다. 이게 별 일인가 싶지만 사회 현상에 A씨처럼 대응하는 사례가 숱하기 때문에 B씨의 이런 ‘평범한 예민함’을 새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언뜻 B씨가 A씨보다 순진하고 세상물정에 어두워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천적으로 따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설령 A씨의 의구심대로 수치가 축소되는 조작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B씨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 관해서도 비슷한 구도가 조성되었다. 한쪽은 정부나 주류 언론의 발표를 어지간하면 또는 무조건 불신하면서 고의적인 침몰설, 국정원 개입설 등 음모론에 쉽게 경도되었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근거도 부족했거니와 음모론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기술과 레토릭조차 찾기 드물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음모론 게시물을 연달아 링크하는 와중에 많은 시민들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대결로 여기게 되었고 끝내 사건에 대해 사유하기를 멈추거나 예전에 하던대로 진영 논리에 기대게 되었다.   반면 화물 과적, 선박 연령 완화, 평형수 부족 등 뻔히 드러나 있는 문제들에 집중한 사람들이 있다. 이 원인들은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가서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불러 일으킨 시장만능주의’로 요약된다. 이 같은 사회 풍조나 이데올로기는 정권이나 국정원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뿌리가 깊다. 그래서 더더욱 진지하고 치열하고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 다만 그것들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사실은 백일하게 드러나 있고, 사건 직후 시장만능주의에 물과 거름을 주어온 세력들도 대놓고 규제 완화 조치들을 옹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등 호조건도 함께 주어져 있었다. 이를 활용하지 않고 음모론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음모를 새로 밝혀내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C씨. 인조잔디에 비판적인 것은 A, B씨와 같지만 마사토 운동장까지 싸잡아 문제삼고 있다. 마사토는 물빠짐이 좋고 촉감이 부드러운 장점을 가져서 인조잔디의 대안으로 곧잘 거론된다. C씨는 모래에서도 중금속이 검출되었다고 불평하지만 마사토에서도 그랬는지는 입증하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 조사할 문제임은 틀림없으나, C씨의 편견은 너무나 명확하다. “도대체 이 세상에 안전한 게 뭐가 있을지 의문이다.” 마사토와 인조잔디 외에는 천연잔디라는 방안이 있는데(참고로 천연잔디는 인조잔디처럼 축구 종목 위주로 공간을 획일화한다는 점을 갖고 있어서 학교에서 인조잔디의 오롯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세상에 어떤 좋은 걸 해도 똑같을 듯”이라는 C씨가 천연잔디를 대안으로 여기고 있을 리도 없다. 결국 이분 말대로면 운동장을 없애버리든지 그냥 살던대로 살든지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선택의 여지 없이 후자겠지만.   세상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 무비판적이라는 지적을 들어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실을 개선할 수 없는 비판을 늘어놓고, 지적을 받을라치면 “나는 분명히 비판했다”고 알리바이를 댄다. 아둔한 나는 그것이 본디 인간이 간직한 성질인지 아닌지 통찰하기 힘들다. 다만 세상을 바꾸려는 활동가들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나를 비롯해 개선이나 변혁을 추구하는 이런저런 집단과 그 구성원들도 아직까지 자유롭지 않은 문제다. 개성을 가로막는 사회에서 자기 표현이나마 분명히 하려고 집착하는 태도는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자기 표현으로 느끼는 보람이 활동 목적의 전부이거나 핵심인가? 또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동물원!동물원..동물원? 녹색당, 카라, 동변 동물원법 통

녹색당/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카라)/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이 모여 2년째 방황중인 동물원법 제정을 위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현재 장하나의원, 한정애의원, 양창영의원의 동물원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있고 4월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공청회가 개최됩니다. 한편 정부에서도 환경부가 동물원의 총괄 관리 행정기관으로서 동물원법에 대한 정부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하나의원의 동물원법안을 제외하면, 동물원법의 본래 취지인 동물원의 발전과 동물복지의 도모를 충분히 규정하고 있지 못합니다. 2015년 논의되는 동물원법은 반드시 현대 동물원의 4대 기능(종보전, 연구, 교육, 건전한 위락)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열악한 동물수용시설 ‘모두’에 대해 의무 등록제를 실시하여 실태를 파악하고 최소 준수사항을 지키게 하며, 이를 어길시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00"] 동물원![/caption]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00"] 동물원.[/caption]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00"] 동물원[/caption]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00"] 동물원?[/caption]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00"] 동물원??[/caption]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00"] 동물원???[/caption] 녹색당/카라/동변은 환경부에 ‘동물원 및 수족관법’(이하 ‘동물원법’으로 칭함)의 제정 방향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여 올바른 동물보호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협의중에 있습니다. 또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모든 위원실에도 이 자료를 전달하여 우리가 원하는 동물원법이 갖추어야 할 최소 요건에 대해 설득해 나갈 예정입니다.   녹색당/ 동변/ 카라는 동물원법이 동물원에 수용된 동물들의 복지 확보는 물론, 종보전 기관으로서의 발전을 이끌고, 기타 동물 수용 시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복지 수준을 확보하는 안전장치가 되어, 궁극적으로 무자격 동물 수용시설의 난립을 제어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기관들은 현대 동물원의 4대 기능을 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이 의견서의 내용이 최대한 관철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어지는 활동을 지켜보아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물원 및 수족관법’(이하 ‘동물원법’으로 칭함)의 제정 방향에 관한 의견서‘ 첨부파일 참조)     파일 다운로드